비닐장갑을 끼고 치킨을 먹어도 손에 기름이 묻는 과학적 이유
손에 기름을 묻히지 않으려고 사용한 비닐장갑(위생장갑)이 유명무실한 경험을 해 보았을 것입니다. 특히, 치킨을 편하게 뜯기 위해 비닐장갑을 사용했지만 다 먹고 난 후 손가락 끝에 묻어있는 기름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치킨의 기름이 비닐장갑을 통과해서 손에 묻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위생장갑을 껴도 손에 기름이 묻는 이유 즉, 기름 분자가 왜 비닐을 통과하게 되는 것인지 알아보고, 더 나아가서 손에 기름을 묻히지 않고 치킨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도 알아보겠습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편의상 비닐장갑과 위생장갑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병행 표기하였습니다.)
비닐장갑의 생김새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위생장갑은 저밀도 폴리에틸렌(Low-Desnity Polyethylene, LDPE)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폴리에틸렌은 석유에서 추출한 원료인 에틸렌을 중합하여 만든 고분자 화합물로, 에틸렌이 반복적으로 결합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폴리에틸렌은 에틸렌의 밀도에 따라 고밀도(High-Density Polyethylene, HDPE)와 저밀도로 나뉘며 석유에서 추출하였기 때문에 기름과 친한 친유성 물질입니다. 그림 1은 에틸렌과 폴리에틸렌의 화학 구조입니다.1)
그림 1(a)는 에틸렌의 구조입니다. 에틸렌은 탄소와 탄소가 이중결합하고 탄소 1개에 수소 2개 붙은 불포화 탄화수소입니다. 에틸렌에 특정 고온고압 조건을 가해주면 그림 1(b)의 폴리에틸렌이 탄생합니다. 폴리에틸렌은 적게는 수백 개, 많게는 수십만 개의 에틸렌이 모여 기다란 체인 형태를 한 고분자 물질입니다. 위의 화학 구조에서는 점으로 표현되었지만, 이 부분은 동일한 구조가 반복되는 구간입니다.
저밀도는 촘촘하지 않다는 것인데, 이는 분자 구조 사이의 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밀도와 저밀도 폴리에틸렌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아래 그림 2를 첨부하였습니다. 그림 2는 고밀도 폴리에틸렌과 저밀도 폴리에틸렌의 구조를 단순화한 그림입니다.
HDPE와 LDPE 비교
밀도가 달라지는 이유는 에틸렌의 중합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폴리에틸렌 분자 사슬 분포와 곁가지 사슬 개수 및 길이 때문입니다.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 고밀도 폴리에틸렌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한 직선의 체인 형태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다른 고분자와 결합을 용이하게 만들어 줍니다. 반면에 저밀도 폴리에틸렌은 메인 사슬에 곁가지 사슬이 많이 붙어 있는 구조입니다. 고밀도 폴리에틸렌과 비교했을 때 다른 고분자와의 결합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밀도가 낮아지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다수의 곁가지로 인해 발생하는 결합력 약화는 반드레발스 힘 즉, 반드레발스 결합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반드레발스 결합은 비극성 분자 간의 인력, 즉 분자 사이에 서로 끌어당기는 힘인 반드레발스 힘에 의한 결합을 말합니다. 고밀도 폴리에틸렌은 직선 형태의 체인 구조이기 때문에 분자 간의 반드레발스 힘이 쉽게 작용하여 빼곡히 정렬되지만, 저밀도 폴리에틸렌은 곁가지 구조로 인해 반드레발스 결합이 약화되면서 끌어당기는 힘이 약해지고, 상대적으로 빼곡하지 못한 정렬로 인해 낮은 밀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친유성 물질인 기름이 LDPE를 더 잘 통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 3은 앞서 설명한 고밀도 및 저밀도 폴리에틸렌의 표면을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1) 왼쪽 사진에서는 HDPE의 표면으로부터 볼록 튀어나온 섬유의 둥글 납작한 끝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LDPE는 HDPE보다 더 적은 밀로도 표면에서 뻗어가는 긴 구형의 섬유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를 통해서도 두 폴리에틸렌 간의 밀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고밀도 폴리에틸렌은 저밀도 폴리에틸렌에 비해 불투명하고 내구성, 강도, 내열성이 좋습니다. 하지만 단단하기 때문에 가공은 다소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에 반해 저밀도 폴리에틸렌은 상대적으로 덜 단단하여 가공이 용이하다 보니 투명비닐이나 포장지에 많이 활용됩니다.
기름이 비닐장갑을 통과하는 이유
정리해 보면, 위생장갑을 껴도 손에 기름이 묻는 이유는 위생장갑이 기름과 친한 친유성 물질이면서 틈이 촘촘하지 못한 저밀도 폴리에틸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비닐장갑을 끼고 물을 만져보는 것입니다. 비닐장갑에 물을 흘려보면 물방울이나 물줄기가 형성되며 또르륵 흘러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은 기름처럼 비닐장갑 표면에 붙지 않고 비닐장갑을 통과하지도 않습니다. 물과 기름이 잘 섞이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죠.
손에 기름을 묻히지 않고 치킨을 먹고 싶다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흔히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위생장갑을 두 겹 이상 끼고 치킨을 먹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기름이 손에 묻어 나올 것입니다. 두 겹을 착용함으로써 기름이 통과되는 시간만 늦춰줄 뿐이죠. 내유성인 니트릴 장갑을 낀다면 기름을 좀 더 차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며 치킨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기름 묻는 것이 너무 싫다면 포크로 찍어 먹거나 순살 치킨으로 먹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문득, 고밀도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장갑을 끼고 먹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힘든 이유는 고밀도 폴리에틸렌의 특성 때문입니다. 고밀도 폴리에틸렌은 인장강도가 좋고 뻣뻣하면서 단단하기 때문에 외부 충격을 잘 견디는 각종 용기(페트병 뚜껑, 파이프 등)에 사용됩니다. 따라서 고밀도 폴리에틸렌 소재로 비닐장갑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만든다고 할지라도 실용성이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으나, 치킨은 맨손으로 편하게 뜯어먹고 비누로 손을 씻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마칩니다.
참고문헌
1) https://hdpegeneralinfo.data.blog/molecular-structure-and-proper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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